팀장이 자신감을 얻고 다른 회사의 스카웃 제의를 받고 떠났고 나와 하드웨어 단 두 명만 남은 상태에서, 사장님께선 나에게 제안을 하셨다. 너가 팀장이 되어 보라고.
아직 30이 되지 못한 20대 말 나이로선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젊은 나이에 작지만 연구소 탑이 된 나에게는 기쁨과 연구소 운영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 찬 상태였다.
우선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주변 인맥을 동원하여 젊고 의욕 있는 사람들을 영입하고 채용하여 나를 포함해 6명의 팀을 구성할 수 있었다.
연구소를 운영할 인원을 만드는 고비는 넘어갔지만, 개발한 제품에 대한 결과물을 내야 하는 것과 불러온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이 중압감이 되어 버렸다.
회사에서 야근을 밥 먹듯 하게 되었고, 관리부에 부탁하여 야전 침대를 갖춰 놓고, 월요일에 출근하여 수요일에 집에 가 씻고 옷을 갈아입고 오고, 목요일에 출근해 토요일에 퇴근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정말 많은 것을 공부하고 개발하였다.
윈도우용 디바이스 드라이버를 개발하였고, 최초로 EDMA 를 적용한 PCI 칩을 이용하여 page 단위의 bus master 를 구현하였고, 외주 개발을 맡긴 소프트웨어 wavelet 영상 코덱이 성능과 안정성이 나오지 않자, 예전에 공부했던 mpeg 을 기반으로 MMX 가속을 지원하는 소프트웨어 코덱도 개발하였다.
책임감과 열정은 나의 지식의 폭을 넓히는 것에 많은 도움이 되었고, 결과물도 나쁘지 않게 나오기 시작하여 안정되는 듯 하였지만, 기업 경영이라는 것은 그것 만으로 잘 되는 것은 아니었다.
가격 비싸고 운용이 힘든 PC DVR 제품들이 밀려나고, 값싸고 튼튼하고 다루기 쉬운 Embedded DVR이 대세가 되어 버린 것이었다.
계열 사업인 빌딩자동화, CATV 사업 역시 시대에 뒤쳐져 회사는 어려운 상황이 되었고, 급여도 재 때 들어오지 않게 되어 힘들어 하는 연구원들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진 나는 퇴사를 결정하게 되었다.
실적이 좋은 일부 연구원은 지인을 통하여 아는 회사에 입사 시켰지만, 대부분은 남게 되었고, 미안한 마음과 밀린 급여로 인한 생활고의 한계를 느끼며 나오게 되었다.
또 한번 회사 일로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된 것 같다.
지금은 50의 나이지만, 나는 사업하기에는 멘탈이 강하지 못하다는 한계를 알고 있기 때문에 개인 사업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
결혼은 안 했지만, 나만 바라보고 서울로 올라온 어머니와 동생들의 고생을 덜기 위해서라도 빨리 직장을 찾아야 했고, 면접 보러 다닐 때 마다 겪게 되는 연봉 줄다리기를 하던 중, 제일 원만하게 진행된 안양의 위성 세톱박스 업체에 선임연구원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급여가 밀리지 않고 나온다는 것 만으로도 살 것 같았다.
연구소는 연구소장님과 기획을 담당하는 책임, 하드웨어 담당하는 책임과 선임, 막내 연구원 , 그리고 나 6명이었다.
이 중 펌웨어를 개발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당시 사용하던 OS는 ATi (비디오카드의 ATI가 아니다) 누클리어스라는 RTOS였다.
처음 다뤄 본 OS와 SOC 였지만, OS개발이나 마이컴 , 디바이스 드라이버 개발을 해본 감을 활용하니 생각보다 적응이 빨랐고, 1달 반정도 후부터는 결과물을 내기 시작했다.
3개월 쯤 되어서는 새로운 SOC에 리눅스를 탑재하기 위하여 부트로더를 포팅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살만해 지니, 다니고 있는 회사의 현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팀장의 책임의 무거움에서 해방된 후련함을 느끼면서 선임 연구원으로서 회사를 다니고, 할일 하고 정시 퇴근 했던 나에게 슬슬 야근하라는 압박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시절이 그런 것이었는지, 그 회사가 그런 것인지 , 일이 없어도 회사에서 야근하면서 상사들을 외롭지 않게 해주는 것이 미덕인 분위기가 나에게는 매우 불편하게 느껴졌다.
당시 서울 북쪽인 은평구에서 안양까지 편도 2시간 , 왕복 4시간 거리를 대중교통으로 출퇴근 했던 나에게 야근은 회사에서 자고 가라는 뜻이나 다름 없었다.
야근해 달라는 성원에 하루 큰 맘 먹고 야근을 했지만, 해야 할 일에 대한 계획이나 일정 관리가 없었던 탓에 딱히 할 일은 없고 간간히 소장님과 책임들이 심심하지 않게 잡담이나 나눠 주는 것 외에 할 일은 없었다.
한번 해본 야근은 실망만 커졌고, 생각보다 위성 세톱 박스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고 있던 중, 해드헌팅 업체로 부터 연락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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