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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2일 수요일

척박한 중소기업 고군분투기 - 2


팀장이 자신감을 얻고 다른 회사의 스카웃 제의를 받고 떠났고 나와 하드웨어 단 두 명만 남은 상태에서, 사장님께선 나에게 제안을 하셨다. 너가 팀장이 되어 보라고.

아직 30이 되지 못한 20대 말 나이로선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젊은 나이에 작지만 연구소 탑이 된 나에게는 기쁨과 연구소 운영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 찬 상태였다.

우선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주변 인맥을 동원하여 젊고 의욕 있는 사람들을 영입하고 채용하여 나를 포함해 6명의 팀을 구성할 수 있었다.

연구소를 운영할 인원을 만드는 고비는 넘어갔지만, 개발한 제품에 대한 결과물을 내야 하는 것과 불러온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이 중압감이 되어 버렸다.

회사에서 야근을 밥 먹듯 하게 되었고, 관리부에 부탁하여 야전 침대를 갖춰 놓고, 월요일에 출근하여 수요일에 집에 가 씻고 옷을 갈아입고 오고, 목요일에 출근해 토요일에 퇴근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정말 많은 것을 공부하고 개발하였다.

윈도우용 디바이스 드라이버를 개발하였고, 최초로 EDMA 를 적용한 PCI 칩을 이용하여 page 단위의 bus master 를 구현하였고, 외주 개발을 맡긴 소프트웨어 wavelet 영상 코덱이 성능과 안정성이 나오지 않자, 예전에 공부했던 mpeg 을 기반으로 MMX 가속을 지원하는 소프트웨어 코덱도 개발하였다.

책임감과 열정은 나의 지식의 폭을 넓히는 것에 많은 도움이 되었고, 결과물도 나쁘지 않게 나오기 시작하여 안정되는 듯 하였지만, 기업 경영이라는 것은 그것 만으로 잘 되는 것은 아니었다.

가격 비싸고 운용이 힘든 PC DVR 제품들이 밀려나고, 값싸고 튼튼하고 다루기 쉬운 Embedded DVR이 대세가 되어 버린 것이었다.

계열 사업인 빌딩자동화, CATV 사업 역시 시대에 뒤쳐져 회사는 어려운 상황이 되었고, 급여도 재 때 들어오지 않게 되어 힘들어 하는 연구원들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진 나는 퇴사를 결정하게 되었다.

실적이 좋은 일부 연구원은 지인을 통하여 아는 회사에 입사 시켰지만, 대부분은 남게 되었고, 미안한 마음과 밀린 급여로 인한 생활고의 한계를 느끼며 나오게 되었다.

또 한번 회사 일로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된 것 같다.

지금은 50의 나이지만, 나는 사업하기에는 멘탈이 강하지 못하다는 한계를 알고 있기 때문에 개인 사업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

결혼은 안 했지만, 나만 바라보고 서울로 올라온 어머니와 동생들의 고생을 덜기 위해서라도 빨리 직장을 찾아야 했고, 면접 보러 다닐 때 마다 겪게 되는 연봉 줄다리기를 하던 중, 제일 원만하게 진행된 안양의 위성 세톱박스 업체에 선임연구원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급여가 밀리지 않고 나온다는 것 만으로도 살 것 같았다.

연구소는 연구소장님과 기획을 담당하는 책임, 하드웨어 담당하는 책임과 선임, 막내 연구원 , 그리고 나 6명이었다.

이 중 펌웨어를 개발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당시 사용하던 OS는 ATi (비디오카드의 ATI가 아니다) 누클리어스라는 RTOS였다.

처음 다뤄 본 OS와 SOC 였지만, OS개발이나 마이컴 , 디바이스 드라이버 개발을 해본 감을 활용하니 생각보다 적응이 빨랐고, 1달 반정도 후부터는 결과물을 내기 시작했다.

3개월 쯤 되어서는 새로운 SOC에 리눅스를 탑재하기 위하여 부트로더를 포팅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살만해 지니, 다니고 있는 회사의 현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팀장의 책임의 무거움에서 해방된 후련함을 느끼면서 선임 연구원으로서 회사를 다니고, 할일 하고 정시 퇴근 했던 나에게 슬슬 야근하라는 압박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시절이 그런 것이었는지, 그 회사가 그런 것인지 , 일이 없어도 회사에서 야근하면서 상사들을 외롭지 않게 해주는 것이 미덕인 분위기가 나에게는 매우 불편하게 느껴졌다.

당시 서울 북쪽인 은평구에서 안양까지 편도 2시간 , 왕복 4시간 거리를 대중교통으로 출퇴근 했던 나에게 야근은 회사에서 자고 가라는 뜻이나 다름 없었다.

야근해 달라는 성원에 하루 큰 맘 먹고 야근을 했지만, 해야 할 일에 대한 계획이나 일정 관리가 없었던 탓에 딱히 할 일은 없고 간간히 소장님과 책임들이 심심하지 않게 잡담이나 나눠 주는 것 외에 할 일은 없었다.

한번 해본 야근은 실망만 커졌고, 생각보다 위성 세톱 박스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고 있던 중, 해드헌팅 업체로 부터 연락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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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1일 화요일

척박한 중소기업 고군 분투기-1

 개발 업종에 종사한지 발담근지 벌써 30년이 다 되간다.

한회사에 평균 5년정도 다녔으니 이직을 아주 자주 한 편도, 아주 오래 다닌 편도 아니다.

지방에서 지방대를 나와 지방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당시 PC통신으로 HITEL의 게제동(게임제작 동호회)에서 활동한 것이 운이 좋아 서울 회사에 스카웃 되어 서울 중소기업에 다니게 되었다. (지방에서도 직장을 다니고 있엇지만, 회사 규모나 작업의 스케일이 작다보니 별로 쓸 말이 없다.)

화려한 사무실에 나름 두각을 드러내던 채팅서버, 메신저, 온라인 게임 서비스등을 제공하는 회사였다.

그당시 나는 말단 개발자여서 회사 경영에 대해서는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빠른 적응과 개발 실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IT버블이 꺼지는 것과 동시에 대형 회사들이 비용 절감을 위하여 부가 서비스를 외주 개발에 맡기지 않고 직접 개발자를 채용하여 개발해 사용하는 분위기가 되자 회사는 어려워졌다.

회사가 어려워지니 친절하고 천진난만해 보이더니 사람들의 분위기는 정리 대상에 포함되지 않기 위한 처절한 생존의 장이 되어 버렸다.

서로에게 친절하던 사람들이 상대의 흠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었고, 나에게 친절했던 팀장과도 고성을 오가며 큰 싸움을 하고 난 후 나는 퇴사햐였다.

그런 상황에서 계속 있기에는 내 정신이 강하지도 못했고, 그러면서 까지 남아야 할 정도로 회사가 장래 있어 보이진 않았다.

퇴사 후 몇 달 지나지 않아 회사가 없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을때 예상하던 일이 벌어졌다는 생각과 개발회사 답게 생긴 회사로는 첫 회사와 같았는데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말단 개발자인 나로서는 그 회사가 경영이 어땟다던가 하는 이야기는 하기 어렵다. 지금으로서는 그냥 변해가는 시기를 넘지 못했던 거였다라고 생각하고 있다.

퇴사하고 어디던 들어갈 수 있겠지라는 생각은 안이했다.

IT 버블이 끝나 개발자 고용이 침체된 상황에선 원하는 분야에 개발자로 취업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한번 무서운 상황을 겪고 나니, 분야 상관없이 안정적인 회사를 들어가야겠다고 생각을 했고, 다행히 사람을 필요로 했던 작지만 7층짜리 자기 빌딩을 가지고 있는 중견 PC DVR 제조사에 취업하게 되었다.

OS 개발이나 서버개발을 하던 내가 DVR은 생소한 분야였지만, 나름 잘 적응한 것 같다.

무엇보다 회사의 상황이 실력있는 개발자와 영업 분들이 사장님과 뜻이 맞지 않아 독립하여 회사를 차리셨고, 그 중 두 곳은 많이 커져 상장까지 한 곳도 생겼다.

그러다 보니 연구소는 팀장하나, 하드웨어 개발자하나, 펌웨어 개발자하나, 개발 보조 여성분 한분만 계셨다.

주력 개발자들이 거의다 나가고 선택받지 못한 자들만 남은듯한 느낌이라 분위기가 안쓰러울 정도였다.

심각한 문제는 실질적으로 개발 할 수 있는 개발자가 없었다.

그나마 개발이 가능했던 펌웨어 개발자 분은 내가 입사한지 얼마 안되 다른 회사로 이직하셨고, 회사 내 주 업무는 독립한 회사들로 부터 원 소스의 저작권을 주장하며 개발 지원을 받는 것이었다.

호랑이가 없는 곳에서는 이리가 왕이 된다고 했던가? 이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상황 덕에 몇달동안 PC DVR과 영상에 대하여 공부하여 8개월 정도 지난 후, 나는 팀장에게 PC DVR을 자체 개발 할 것을 허락 받아 4개월 동안 삽질 끝에 초기 버전을 완성했었다.

다행히도 제품은 잔 버그는 많이 있었지만 잘 동작 하였고, 연구원 들에게 성과급을 적지 않게 주실 정도로 사장님은 기뻐하셨다.

이 후 자신감을 얻은 (?) 팀장이 몇가지 사건을 일으킨 후 연구원들이 모두 퇴사하여 나와 하드웨어 2명만 남게 되었다.

또 한번의 위기였다.